1867년 동프로이센에 위치한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다섯번째로 태어난 케테 콜비츠는 비교적 자유로운 가풍 속에서 자랐다. 동판 조각가 루돌프 마우어에게 첫 미술교육을 받았던 케테 콜비츠는 일찍이 16세부터 선원, 농노 등의 노동자층을 주목했다. 케터 콜비츠는 1893년 초연된 게르하르트 하웁트만의 연극 ‘직조공들’을 보고 큰 영감을 받아 1893년부터 1897년까지 6점의 <직조공 봉기> 연작을 시작했다. 이는 하층민으로서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투지를 표현한 것으로 이후 1903년부터 1908년까지 작업한 <농민 전쟁>에까지 이어졌다. 농민들의 열악하고 비참한 삶의 모습을 목도하며 빌헬름 침머만의 ‘대농민전쟁사 개설’에 영감을 받아 <농민전쟁>, <쟁기 끄는 사람들> 등의 연작을 시작했다.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 케테 콜비츠의 둘째 아들 페터가 전쟁에 지원하며 입대한 뒤 10월 22일 18세의 어린 나이로 사망했다. 이를 계기로 그녀의 인생은 절망과 비통의 늪에 빠지게 되며 다시 작업을 시작하기까지 오랜 슬픔 속에 침잠했다. 이후 1922년부터 1923년까지 <전쟁>, <죽음>연작을 이어 나가며 전쟁의 상흔으로 인한 고통과 절망을 표현, 반전과 평화를 외치는 작업을 진행했다. 증오와 불평등, 억압과 부조리에 맞서 평화 반전의 오랜 외침에도 불구하고 1945년 제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기 2주 전 콜비츠는 끝내 사망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