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총칼의 파국



“당신의 아들이 전사했습니다.”

- 1914 년 10월 30일 일기 중 –




 


“너는‘돌아올게요.’라고 말했었지. 네 침대 위에 있던 시든 잎들을 

거두고, 네 유품들을 천으로 덮었다. 하얀 천 위에 흰 자작나무들이 

놓여 있구나. 네 침대 옆에… 아가, 봄이 왔다.”

- 1915 년 4월 11일 일기 중 –






 “씨앗들을 짓이겨서는 안 된다. 이것은 나의 유언이다.”

- 1941년 12월 일기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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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며 아버지 카를과 어머니 케테 콜비츠의 만류에도 둘째 아들 페터는 독일군에 자원 입대한다. 그러나 프랑드르의 딕스뭬텐에서 일주일만에 전사했다. 케테 콜비츠는 전사통지서 한 문장으로 참담한 그 날을 애도했다. 아들을 잃은 케테 콜비츠의 경험은 전쟁의 참상과 반전(反戰)을 작품세계의 중요한 화두로 전환시키는 변곡점이 되었다. 히틀러가 독일 사회를 휩쓸던 당시 그녀를 포함한 지식인들은 연합하여 정권에 저항하였지만 끝내 나치당에 의해 탄압당했다.


케테 콜비츠 역시 자신의 아뜰리에를 떠나야만 했고 전시를 금지당했다. 또한 샤갈, 뭉크, 피카소 등과 함께 퇴폐미술로 분류되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로도 전쟁의 참극은 이어져, 전장에서 죽은 둘째 아들을 따라 이름 붙인 맏손자 페터마저 제2차 세계대전 중 전사한다. 전쟁의 무감각하고 무자비한 야만성에 반대하고 대항했던 케테 콜비츠는 전쟁을 정면으로 맞서며 비극과 절규의 모습 자체를 반전의 소재로 삼아 1922년부터 1925년에 걸쳐 <전쟁>연작을 완성했다. 이번 전시는 총 7점의 <전쟁> 연작 전체를 통해 야만성과 폭력에 정면으로 맞서 평화를 외쳤던 케테 콜비츠의 메시지를 오롯이 전한다.